글
우리 친구해요!
“이리 줘요."
"네?"
"무겁게 들고 다니지 말고 나 주라고요. 여진 씨가 짐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짐이 여진 씨 들고 다니는 것 같거든요. "
뭐래니! 이 사람. 내 앞에 앉았던 그 남자가 내게 다가와 화구박스와 화구통, 그리고 책을 뺏듯이 가져간다.
이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.
"괜찮아, 여진아! 사람 좋아. "
내 얼굴의 황당함을 읽었는지 동기와 과제 이야기하며 앞서가던 윤주가 나를 보며 찡긋해 보인다.
뭐가 좋아, 지금 나 키 작다고 놀린 거잖아. 날 언제 봤다고… 성큼성큼 앞서가는 그 남자.
키가 상당히 크다. 180cm는 넘어 보인다. 울 오빠가 185cm니까, 헐~ 울 오빠 보다도 큰 거 같다.
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작은데 엄마도 170cm에 가까운 킨데 난 주워 왔나? 절친인 윤주도 172cm.
아~부럽다. 나는 160cm가 될까 말 깐데…
“왜, 웃어?”
“응?”
윤주가 이번엔 웃는 거까지 걸고 넘어간다.
"왜 웃는 거냐고? "
"니 선배, 키 크다고 부럽다는 생각 하면서 내가 작긴 하구나 하는 생각에 썩소가 나왔습니다. 궁금한 것이 풀리셨어요? "
"큭, 니 키가 작긴 하지. "
"너~"
“와~ 우리 여진이 무섭네. 그런데 웬일이래 네가 스커트도 입고?”
“아까 말했잖아 엄마 고집. 여자답게 입고 다니고 연애도 해 보란다. 여대에서 뭔 연애???”
“엥~ 정말 어머니가 그런 말씀도 하셨어? 웬일이래? "
"누군가를 좋아해 볼 틈도 없이 결혼한 것이 아쉽다나 봐, 아빠 만난 건 좋지만… 일종의 모순이지. "
"그럼, 좀 자유로워지는 거냐? "
"글쎄다, 연애는 해 보라는데 결혼은 우리 정여사가 마음대로 하지 않을까 싶다. 우리 정여사를 누가 말리겠니? "
"그래서 뭐든 시키는 대로 할 거야? "
"모르겠다. 여태껏 엄마 울타리를 벗어 본 적 없고, 누군가 좋아해 본 적도 없고, 낯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은데 웬만하면 우리 정여사 뜻대로 되지 않을까 싶다. 혼자 사는 것도 싫으니까. "
"재미없어, 너. "
"나도 그렇게 생각은 해, 다람쥐 쳇바퀴. "
"근데 너, 그거 싫어하지 않잖아? "
"그렇지, 문제는 그 정해 놓은 틀을 내가 좋아한다는 거지. "
"이참에 연애나 찐하게 해 보지, 왜? "
"됐거든요, 낯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무슨…"
"어~ 할 맘은 있나 보네? "
"어허~ 쓸데없는 쏘리. "
윤주의 동기들이 불러서 달려가는 윤주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와 절절한 사랑이란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. 그러면 내 그림과 내 삶이 조금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, 내가 봐도 지금까지의 내 생활은 모범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. 지루하고 재미없긴 하다.
"우리 술 마시러 갈 건데 같이 가자, 우리 동기들 괜찮아, 너야 여자들 속에 있지만 난 남자들 속에 있잖니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려 주는 센스도 있어야 연애도 하지 않을까? 그리고 너의 그 낯가림도 한 꺼풀 벗겨질 거고 낯가림이 이 나이 되도록 있다는 것은 네가 사람들을 너무 안 만나서 그런 거라고 봐 나는, 맞지?”
“그럴지도… 하지만 지금은 싫어. 동기들하고 잘 마시고 가셔! 난 들어가련다. 아까 그려 놓은 스케치도 완성하고 싶고, 좀 피곤하기도 하고…”그 남자에게서 화구박스랑 책을 돌려받으려 하니 한사코 갖다 준단다.
왜 이런 데니 이 사람. 도움의 손길을 얻으려나 싶어 윤주를 보는데 윤주는 한술 더 뜬다.
우리 집 위치까지 알려준다.
나 원 참.
낯선 사람과의 침묵
정말 싫은데 차라리 혼자 가는 게 나은데… 멀지도 않은데 굳이 이럴 필요까지도 없는데 …
“땅에 돈 떨어졌어요?”
“네~?”
“자꾸 땅만 보고 걷잖아요?”
“아~”
“고객님! 당황하셨어요?”
“큭”
“웃으니 좋네요. 난 박주성이라고 해요. 이름을 물어 올 줄 알았는데 전혀 궁금해 안 해서 미리 알려주는 거예요. 이래도 저, 인기 많은 남자거든요. 아, 또 웃었네. 윤주랑 같은 학부고요. 군대 다녀온 복학생이에요. 입학하자마자 군대 가서 여진 씨랑은 같은 학년이고요. 신입생 나, 새내기처럼 안 보이나?”
“큭, 보여요.”
“넘 복학생 같아 싫어하나?”
“아~ 그런 건 아니고요. 처음에 낯을 좀 가려요.”
“자꾸 보면 괜찮아요?”
너무 진지하게 물어보니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차라리 시험이면 준비라도 할 텐데… 이런 주관식 너무 어렵다.
“뭐, 그렇죠!”
“그럼, 자주 보면 되겠네.”
“네~?”
연신 말을 걸어온다. 또다시 보기 좋은 미소를 남발하면서.
“다 왔어요, 여기가 집이에요.”
“너무 가깝네요.”
“그래서 괜찮다고 한 건데…”
“불편했어요?”
“그건 아닌데…”
“그럼 됐어요. 윤주랑 친구니까 나랑도 친구 해요?”
“네?”
“우리 친구 하는 거예요. 나, 낯설어하지 않게 낯 익히려 올게요. 내일 봐요.”
그 말만 남기고 뒷걸음으로 나를 보며 연신 손을 흔들어댄다.
“어~ 조심해요, 뒤에 차 와요.”
“아~! 진짜 내일 봐요.”
하고는 뛰어가 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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